가장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농민의 숫자가 2백4십만 명 정도라고 한다. 초 고령 농민과 농사짓지 않는 농민을 제하고 나면 근근이 2백만 명은 되려나? 어제 들렀던 마을회관이 언뜻 보기에 썰렁했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가보다.
그건 그렇고 농사꾼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는 다른 데 있다. 날씨다. 특히 4월 말, 5월 초에 벌어지는 극심한 일교차와 저온 현상이다. 알다시피 이 시기는 농민에게 작물을 심는 시기다. 종자의 발아나 모종의 초기 생장에 필수적인 것이 적정기온이다. 요즘 기후가 그걸 뒤흔든다.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이 20도 이상으로 벌어지고, 최저기온이 4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허다하다. 그렇다고 심는 시기를 마냥 미룰 수도 없다. 작물 성장의 적정 일수를 맞추지 못하면 꽃대가 올라오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봄이 빨리 온 바람에 4월 하순도 되기 전에 고추모종을 심은 농민들이 많다. 날씨 변덕에도 다행히 서리는 피했다 하더라도 극심한 일교차와 저온 현상으로 고추들이 기진맥진 한 상태임에 틀림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전반적으로 유약하여 성장이 더딜 것이다. 그들이 입은 외상의 정도에 따라서는 쇠약한 상태를 결국 벗어나지 못하여 병충해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 고추를 심으며 아내는 걱정이 늘어졌다. “비닐 안이 뜨겁네, 벌써. 내일 새벽에 5도까지 내려간다는데.” 날씨가 그렇다 보니 걱정도 냉온탕이다. 대책회의 끝에 옆 산에 기어올라 썩어가는 낙엽을 긁어 부대자루에 담아 내려왔다. 이런 날씨를 좀 이겨보라고 모종 심은 자리에 난 구멍을 낙엽으로 메웠다. 날이 너무 뜨겁더라도 고추 줄기가 타는 걸 막아달라는 취지고, 또 기온이 급강하하면 보온덮개 역할을 해주십사 하는 부탁이다. 머릿속 생각은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효과가 날 지는 지켜보아야 안다.
영화, 인터스텔라 정도의 기후난동이 아닌 요즘 날씨쯤이야 약소하지만, 농사꾼은 그 사소함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농사짓는 일 년 사이 벌어지는 각종 사소함의 총합은 큰 사소함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게 앓는 소리로 들린다면, 맞다. 그렇다. 이 세상에 배포 큰 농사꾼은 없다. 좁쌀만 한 가슴으로 아등바등 제 논에 물 대면서 곡식 한 톨이라도 더 영글게 하려는 좀생이들이 농민이다.
우리 부부야 그런 경지에 가려면 아직도 머나먼, 첩첩산중이지만 흉내는 낸다. 덤 앤 더머 소리 들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