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바실 | 덤바우 진바실 | 덤바우

덤바우잡전

스치다 젖어들다

들이   2015-06   조회 299  

 대나무 숲에는 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 대나무 숲은 바람 스치는 소리를 그치는 법이 없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제 이파리를 스스로 비벼 소리를 내는 것이다. 바람소리, 바람을 부르는 바람소리가 대숲에는 그득하다. 이윽고 바람이 불어 대숲이 비로소 바람소리를 내더라도 바람소리는 그 바람소리다

 

김천 직지사 초입에는 죽벽이 있다. 벼랑을 버티며 장대가 곧추선 죽벽이다. 오늘은 그곳에 비가 내려 빗소리를 낸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소리로 운다. 모든 댓잎이 일제히 메아리로 자지러져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떠나온 바람이 마침내 소리를 찾고, 때맞춘 빗줄기로써 씻기는 저 대숲 발목에는 또 쪽빛누리공방이 있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기어이 바느질을 대물림하고 만 김정희선생의 쪽빛누리공방이 대숲 언저리에서 고즈넉하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부는 대 바람소리가 빗질도 되고 죽비도 되는 곳이다. 색깔들의 조각보로, 순한 삶으로 꿰매어지는 곳이다. 시나브로 바늘과 실, 천 조각이 손 안에서 웅숭깊어지는 공방인 것이다.

 

지난밤부터 내린 장맛비가 무거웠던 소매를 털 때쯤 공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제각각 가져온 음식들을 모아 상을 차렸다. 목화솜에 태운 듯 푸릇한 하늘 조각이 포근할 즈음 죽벽은 대바람소리 대신 사람소리로 가득 찼다. 김정희선생은 언제나처럼 악동이었고, 곁을 한 이들 또한 새벽 산새들 마냥 경쾌하였다. 부군 최선생은 말 한마디 없이도 즐거움에 겨워 좌중은 덩달아 신이 났다. 그리하여 배부른 오후가 깊고, 성마른 날씨를 이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죽벽의 잎사귀들을 흔들었다.

 

이 사람들이 머잖아 고운 바느질 그림을 닮을 것이다. 주고받다가 급기야 서로 스며들어 나남의 경계가 흐려지리라 짐작한다. 차라리 섞임의 경지에 들어 삶의 풍성함에 새삼 감탄하기를, 무엇보다 청명한 대바람숲이 되기를...

 

뒤늦게 귀앓이를 하는 김정희선생의 빠른 쾌유를 빈다.





지난 게시물 보기(2015년4월 이전글)
2015 진바실|덤바우
전화 : 010-7238-5181
이메일 : ykwoo3@gmail.com
입금 계좌 : 농협 737033-56-041817 김선미
사업자 등록 : 513-18-07106
통신판매 : 제2013-경북구미-0146호